작은 한 코

2016. 12. 25. 02:33생각

일상의 자투리를 이용해 한 공정씩 진척시키기.
요즘 푹 빠진 은유 작가의 문장이 내게 폭 와닿았다. 친구와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눈 뒤였다.
요 며칠 전부터 나는 매일 양말을 뜨고있다.
예전부터 양말을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무늬로 떠서 자급하고 싶었다. 그래서 양말뜨개책도 샀지만 한 번 훑어보고는 엄두가 안나 오랫동안 방치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아예 날을 잡고 한 자리에서 종일 떠보았다.
한 코를 뜨고 이어서 한 코를 뜨고, 처음엔 제자리가 어딘지도 찾지 못했던 손가락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그 일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 막막했던 것이다.
내 속도로 양말 한 짝을 완성하는데 꼬박 12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한 번 만들고 난 뒤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예측할 수 있는 지식을 얻었다.
나머지 한 짝을 만드는데 같은양의 시간을 내려고 한다면 쌍으로는 영영 못 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중 12시간을 내는 것은 버겁지만 1시간은 가볍다. 딱 한 시간만. 그 이하는 무엇을 하기에 너무 적고 그 이상은 부담이 된다.
매일 1시간씩 양말을 뜬다면 12일 후엔 한 짝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한 달이면 한 켤레를, 일 년이면 열 두 켤레의 양말을 자급할 수 있다.
가지고 있는 양말 서너개로 일 년을 사는 나로서는 소중한 어떤 이에게 선물도 할 수 있는 꽤 매력적인 계산이다.
그렇게 매일 한 시간의 자투리를 이용해 한 코 한 코 진척시키는 중이다.
뒤엉켜버린 문제뭉치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 지 몰라 막막했다.
'난 네가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좋겠어'
친구의 말에 커다란 위안을 얻었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내가 잡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한 코 한 코 풀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잘 듣는 귀가 되어보려 한다.

 

반응형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려움  (0) 2019.10.12
18/2/21 수요일  (0) 2018.02.22
따뜻한 사람  (0) 2016.03.17
Faites l'amour, pas des heures sup  (0) 2016.03.11
토닥/여성주의소모임/3월/후기  (0) 2016.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