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농사의 만남

2022. 2. 24. 04:31생각

비트코인과 주식을 이야기하면 몇몇 친구들은 의아해한다.

충분히 이해해, 나 스스로도 이 상황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웠으니까.

탈자본주의를 꿈꾸며 대안을 찾은 끝에 선택한 삶이 기계조차 쓰지 않는 보다 생태적인 방식의 농사였으니.

그러다 돌연 돈공부를 한답시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돈으로 돈을 버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인 것을.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받은 충격과 두려움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쩔수없이 인정하게 만들었고,

이제보니 늙어가는 몸으로 투쟁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보다,

이 체제를 받아들이고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 더 쉽고 빠른 길처럼 보였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여 집을 마련하거나 부자가 되는 것을 일찍이 포기하고 대안적인 삶을 추구했던 내가 도로 회귀한 가장 큰 요인은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집 구하면서 찾아보던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타고 보니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꽤 많더라.

부잣집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스스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그것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급등했다.

어떻게 100억 부자가 되었나, 보니 방법도 참 다양하다. 부동산, 국내주식, 해외주식, 코인, 달러 등등.

내가 놀랐던 이유는 이전까지는 쉬쉬하며 아는 사람을 통해서만 알음알음 알 수 있었던 정보를 집에서 편하게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스마트폰이 발전해서 누구나 미디어를 생산하고 배포하고 돈을 버는 일이 가능해져서, 기술로 정보의 불평등이 완화된 것이 놀랍고 반갑다.

덕분에 작년에 집주인이 이 집을 보지도 않고 산 이유 (시세에 비해 싸니까), 동네 아파트 가격이 전년보다 2-3억씩 오른 이유, 젊은 부자가 많아진 까닭, 10억 정도는 부자가 아니라는 우스개소리, 기업은 너도나도 메타버스 사업에 뛰어들고, 자연농을 같이 배우고 명상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왜 주식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유튜브로 자본주의를 공부하면서 이 모든 변화가 코로나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자본주의를 무시하고 탈자본을 외쳐도 이미 나는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다..

알게 된 이상 더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게다가 큰 돈을 버는 일이 예전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보였다.

지금은 돈을 빠르게 벌 수 있는 플랫폼이 있고 누구나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에 무지한 나조차 공부를 조금만 한다면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뛰어들기엔 내 안에서 어떤 의문이 일어나 주춤거렸다.

비트코인과 농사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거지?

자본주의와 생태주의가 어떻게 관계맺을 수 있지?

그 둘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나라는 사람이 분열하지 않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친구에게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두 세계가 어떤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그 둘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으로 대답했다.

투자를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보유한 주식이나 코인이 한순간 휴지조각이 되는 상황이겠지.

그럼 그렇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자본주의 체제가 전복되거나 전기가 셧다운되는 때가 아닐까.

그런데 자본주의는 유지하려는 에너지가 무척 커서 좀처럼 전복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전기가 끊기는 일이 더 현실과 가까울 것 같은데,

지금처럼 모든 것이 전기 에너지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정전이라면 주식이나 코인 뿐 아니라 세상이 싹 다 망하는 것이 아닌가?

은행에서 돈도 못 뽑고, 돈이 있다해도 컴퓨터가 먹통이니 일하는 사람도 없을테고, 재화는 사는 게 아니라 빼앗을테고, 그러다 보면 생명 연장에 필요한 식량이 가장 귀한 세상이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먹을 식량을 발견하고 키우고 요리하고 저장하는, 농부의 지식과 기술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 되지 않을까.

금융투자는 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장 최신의 기술 문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고,

농사(+수렵채집)는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이 붕괴되는 때 가장 필요하게 될 지식과 기술이고.

그렇게 끝과 끝에서 만나 이어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한 상상이지,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을만큼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테다.

오늘 한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돈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 내 행복을 위해서 하는거야"

어… 그러게. 나도 그런데.

돈이 없으면 불안하고 긴장되고 불행하다는 것을 경험했어서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것 뿐인데.

무슨 이념이나 주의나 그런거 다 떠나서 그저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누군가를 애써 설득할 필요도 없는 분명한 사실은 늘 이렇게 단순하다는 것을.

종종 잊고산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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